유럽의 기능성 배리어 페이퍼 혁신과 국내 종이 포장재 산업의 과제
포장산업에서 종이는 가장 오래된 소재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최근 유럽에서 빠르게 확산하고 있는 종이 기반 포장재는 과거의 종이 포장과는 성격이 다르다. 단순히 플라스틱을 종이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플라스틱 연포장재가 담당해 왔던 수분 차단성, 산소 차단성, 내유성, 향미 보존성, 열접착성, 인쇄 적성, 자동포장기 적용성까지 종이에 부여하려는 기술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른바 ‘페이퍼라이제이션(Paperization)’이다. 종이화 또는 종이 기반 전환으로 번역할 수 있지만, 그 의미는 단순한 소재 대체를 넘어선다. 플라스틱과 알루미늄을 복합적으로 사용해 온 기존 포장 구조를 재검토하고, 기능성 코팅과 공정기술을 활용해 종이 중심의 새로운 포장 시스템으로 재설계하는 흐름이다.
Koehler Paper, Sappi, Paptic, Metsä Board 등 인터팩 2026에 참가한 유럽의 대표적인 제지·포장재 기업들은 종이가 더 이상 친환경 이미지를 강조하는 보조 소재가 아니라, 기존 플라스틱 포장재와 경쟁할 수 있는 산업용 소재로 이동하고 있다고 설명하였다.
국내에서도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한솔제지는 기능성 차단지인 프로테고(Protego)를 개발한 데 이어, 2026년에는 기존 설비 적용성과 열접착성을 강화한 프로테고 HS(Heat Sealable)제품군을 선보였다. 유럽과 국내의 기술 흐름을 함께 살펴보면, 향후 종이 포장재 시장의 승부처가 어디에 있는지가 보다 분명하게 보인다.
1. 종이 포장재가 다시 주목받는 이유
종이는 본래 재생 가능한 자원에서 생산되고, 소비자에게 익숙한 분리배출 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식품, 화장품, 생활용품 등에 사용되는 연포장재 시장에서는 오랫동안 플라스틱과 알루미늄이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가볍고 유연하며, 열접착이 쉽고, 수분과 산소를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고기능성 포장을 구현하기 위해 PET, PE, PP, PA, EVOH, 알루미늄 포일 등을 여러 층으로 합지할 경우 사용 후 재활용이 매우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소비자가 외관만 보고 재질을 구분하기 어렵고, 분리배출을 하더라도 복합재질을 경제적으로 분리하기 쉽지 않다. 포장의 기능은 높지만 순환경제 측면에서는 구조적인 한계를 갖는 것이다.
유럽연합의 PPWR은 이러한 문제를 포장재 설계 단계부터 다시 살펴보도록 요구하고 있다. Regulation (EU) 2025/40은 모든 포장재에 적용되며, 포장재의 전 생애주기에 걸쳐 지속가능성, 표시, 생산자책임, 불필요한 포장 감축, 재사용, 재활용 등의 기준을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은 2026년 8월 12일부터 적용된다.
PPWR 제6조는 시장에 출시되는 모든 포장이 재활용 가능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한다. 재활용 가능성을 판단할 때에는 단순히 “재질상 재활용할 수 있는가”만 보는 것이 아니다. 재질 회수가 가능하고, 다른 폐기물 흐름의 재활용성을 저해하지 않으며, 실제 분리수거와 선별을 거쳐 일정 규모 이상으로 재활용될 수 있어야 한다.
PPWR은 2030년부터 디자인 포 리사이클링(Design for Recycling) 기준을 적용하고, 포장재의 재활용성을 A·B·C 등급으로 평가하는 구조를 도입한다. C등급 미만의 포장은 기술적으로 재활용이 어려운 포장으로 간주되며 시장 출시가 제한된다. 2038년부터는 A 또는 B등급만 시장에 출시할 수 있도록 기준이 강화된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2028년 1월 1일까지 포장재 카테고리별 세부 기준을 마련할 예정이다.
따라서 페이퍼라이제이션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다. PPWR 시행을 앞두고 브랜드 기업과 포장재 제조기업이 복합재질 포장의 구조를 다시 설계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실질적인 대응 전략이다.
2. Koehler Paper: 제품에 필요한 기능만 선택하는 배리어 페이퍼
독일의 Koehler Paper는 NexPlus와 NexPlus Advanced제품군을 중심으로 기능성 종이 포장재를 확대하고 있다. 이 제품은 종이 원지의 뒷면에 수성 배리어 분산 코팅을 적용하여 내유성, 향미 차단성, 산소 차단성 등을 확보하도록 설계되었다. 종이의 재활용 흐름과 양립할 수 있는 코팅 구조를 지향한다는 점이 핵심이다. 주목할 부분은 모든 포장재에 동일한 수준의 차단성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향신료와 건조식품처럼 상대적으로 낮은 차단성으로도 충분한 제품이 있는 반면, 향미 보존이나 산소 차단이 중요한 제품도 있다. Koehler Paper는 내용물의 특성에 따라 필요한 기능을 선택할 수 있는 ‘온디맨드 배리어 페이퍼’ 개념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플로팩, 각저 봉투, 삼방실링 봉투, 파우치 등 기존의 다양한 포장 형태에 적용할 수 있도록 설계하고 있다. 새로운 친환경 소재가 시장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소재 자체의 친환경성뿐 아니라 기존 자동포장기에서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판단이다. 향후 경쟁은 수성 코팅을 넘어 바이오 기반 코팅과 복합 기능성의 고도화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종이에 기능을 더하면서도 재활용 공정에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설계하는 기술이 중요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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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Sappi: 종이 포장은 파일럿 단계를 넘어 대량적용 단계로 이동한다
Sappi는 인터팩 2026을 페이퍼라이제이션이 실험 단계를 넘어 본격적인 시장 확대 단계로 전환된 시점으로 평가하였다. PPWR 시행 방향이 구체화되면서 규제 불확실성을 이유로 결정을 미뤄 왔던 브랜드 기업들이 소재 전환을 본격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Sappi가 강조하는 핵심은 원단 가격이 아니라 총소유 비용(Total Cost of Ownership)이다. 종이와 플라스틱의 원단 단가만 비교하면 플라스틱이 저렴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 분담금, 재활용성 등급에 따른 비용 차이, 규제 대응 비용, 브랜드 신뢰도, 소비자 선택, 향후 포장재 전환 비용까지 함께 고려하면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Sappi는 자체 조사 결과를 근거로 총소유비용 관점에서 분석한 사례의 절반 이상에서 종이가 플라스틱과 유사한 비용 경쟁력을 확보하거나 더 선호되는 결과를 보였다고 설명하였다. 이는 기업 자체의 분석 결과이므로 일반화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지만, 포장재의 경제성을 평가하는 기준이 바뀌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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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ppi는 제과류와 같이 수분, 기름, 향미 차단성이 필요한 제품에 적용할 수 있는 Guard Duo배리어 페이퍼도 제시하였다. 이제 종이 포장재는 단순한 종이봉투가 아니라, 식품 보존성과 자동포장기 적용성을 함께 고려한 기능성 소재로 발전하고 있다.
4. Paptic: 기존 플라스틱 롤을 섬유 기반 롤로 교체한다
핀란드의 Paptic은 기존 생산라인을 크게 변경하지 않고 플라스틱 소재를 섬유 기반 소재로 전환할 수 있는 ‘드롭 인(Drop-in)’ 접근을 강조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기존 포장설비에 플라스틱 필름 롤을 투입하던 방식에서, 소재 롤만 섬유 기반 소재로 교체하는 개념이다. 친환경 소재가 우수한 환경성을 갖더라도 생산속도가 지 나치게 떨어지거나, 설비 개조 비용이 많이 들거나, 제품 표면에 분진과 흠집이 발생하면 실제 산업 현장에 적용 되기 어렵다. Paptic은 유통용 봉투, 전자제품, 프리미 엄 제품, 위생 관련 비식품 포장 등에 적용 가능성을 검증 해 왔다. Paptic이 다음 단계의 과제로 제시한 것은 코팅 없이도 열 접착이 가능한 섬유 기반 소재이다. 현재 다수의 종이 기 반 소재는 실링성을 확보하기 위해 별도의 코팅이 필요하 다. 그러나 코팅은 소재 구조를 복잡하게 만들고 재활용성 평가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향후에는 종이의 재활용성을 유지하면서도 플라스틱에 가까운 실링성과 가공성을 확 보하는 방향으로 기술 경쟁이 이어질 전망이다. 5. Metsä Board: 소재 경쟁은 산림과 공급망 경쟁 으로 확대된다 핀란드의 Metsä Board는 종이 기반 포장재 경쟁력을 소 재 성능만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안정적인 원료 확보, 지 속가능한 산림 관리, 생산시설의 에너지 전환, 장기 공급 망 구축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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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sä Board는 2030년까지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는 생산체계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일부 생산거점은 이미 98% 수준의 화석연료 비사용 체계를 구축했다고 설명한다. 모기업 그룹에는 약 9만 명의 산림 소유자가 참여하고 있으며, 매년 약 3,300만 그루의 나무를 식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향후 종이 포장재 경쟁이 단순히 “종이가 친환경적이다”라는 선언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원료가 어디에서 왔는지, 산림이 지속가능하게 관리되고 있는지, 생산 과정에서 탄소배출을 얼마나 줄였는지, 사용 후 재활용 체계가 실제로 작동하는지까지 확인해야 한다.
6. 국내에서도 시작된 기능성 종이 포장재 경쟁
국내 제지산업 역시 디지털화에 따른 인쇄용지 수요 감소와 원재료 가격 변동, 에너지 비용 상승이라는 복합적인 환경에 놓여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포장용지와 기능성 종이는 단순한 대체 시장이 아니라 새로운 성장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국내 제지업계도 종이를 인쇄 매체가 아니라, 플라스틱을 일부 대체할 수 있는 고기능성 소재로 전환하기 위한 연구개발을 확대하고 있다. 최근 국내 제지업계가 종이 포장재를 중심으로 새로운 수요를 확보하려 한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다만 국내 시장에서는 종이 포장재의 적용 범위를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컵지, 식품용기, 트레이, 완충재, 택배 포장과 같이 비교적 두꺼운 종이 기반 포장재 시장과, 플라스틱 연포장재를 대체하려는 얇은 기능성 배리어 페이퍼 시장은 기술적 요구 수준이 다르다.
특히 커피, 김, 초콜릿, 분말제품, 제과류, 화장품 파우치 등에 적용하려면 단순한 내수성과 내유성만으로 충분하지않다. 산소투과도(OTR), 수분투과도(WVTR), 실링강도, 낙하 충격, 핀홀 발생 가능성, 인쇄 적성, 자동포장기 운전속도, 식품접촉물질 적합성, 재펄프화 가능성까지 함께 평가해야 한다.
국내에서 주목할 대표적인 사례가 한솔제지의 프로테고와 한국제지의 그린실드이다.
7. 한솔제지 프로테고: 국내 기능성 배리어 페이퍼의 대표 사례
한솔제지의 프로테고(Protego)는 수분, 산소, 유분, 냄새 등을 차단할 수 있도록 설계된 기능성 종이 소재이다. 한솔제지는 프로테고 자체로 차단 기능과 실링 성능을 확보할 수 있어 합지 공정을 줄이고 생산성 향상에 기여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알루미늄과 플라스틱 필름을 일부 대체하고, 종이 재활용 흐름으로 연결할 수 있다는 점을 주요 특징으로 제시하고 있다.
프로테고는 54g, 70g, 90g 평량으로 공급되며, 커피와 차류, 식품, 제과, 화장품, 생활용품, 반려동물 사료 등 다양한 제품군에 적용할 수 있도록 개발되었다.
프로테고의 의미는 단순히 국내 제지기업이 친환경 종이를 개발했다는 데 있지 않다. 국내에서도 기존 연포장재의 기능을 종이 기반 소재로 이전하려는 기술개발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기존의 고차단성 연포장재는 인쇄필름, 알루미늄 포일, 실런트 필름 등을 여러 겹으로 합지하는 구조가 일반적이었다. 프로테고는 종이 원지에 기능성 배리어를 부여하여 구조를 단순화하고,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이는 방향을 제시한다. 모든 제품에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비교적 높은 차단성이 요구되는 제품군까지 종이 기반 전환 가능성을 확대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8. 프로테고 HS: 열접착성과 기존 설비 적용성을 강화하다
| 한솔제지는 2026년 4월 종이 기반 2차 포장재인 프로테고 HS(Heat Sealable)를 출시하였다. 초콜릿, 사탕, 분말 소스, 김, 커피 등 다양한 제품에 적용할 수 있으며, 고객 사의 인쇄 방식과 요구 물성에 따라 5개 제품군으로 구성 되었다. 인쇄, 가공, 충전 등 주요 패키징 공정에 대한 사 전 테스트를 완료해 별도의 설비 변경 부담을 줄일 수 있 도록 설계했다는 설명이다. 이 지점은 유럽 기업들이 강조하는 방향과 정확히 맞닿 아 있다. 친환경 포장재가 실제 시장에 확산하려면 소재 의 친환경성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존 설비에서 생산할 수 있어야 하고, 생산속도를 유지해야 하며, 실링 불량과 파손률 증가를 방지해야 한다. 포장재 전환에 따른 비용 과 위험을 줄여야 브랜드 기업도 움직일 수 있다. 한솔제지는 프로테고 HS가 종이 소재 특성상 국내 EPR 분담금 절감에 기여할 수 있으며, PPWR의 재활용성 A 등급 방향에 부합하도록 설계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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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여기에는 구분이 필요하다. PPWR의 재활용성 A·B·C등급은 규정에 포함되어 있지만, 포장재 카테고리별 디자인 포 리사이클링 세부 기준은 2028년까지 위임법령을 통해 구체화될 예정이다. 따라서 현시점에서
‘PPWR A등급 부합’이라는 표현은 유럽연합이 공식 인증한 최종 등급이라기보다, 향후 예상되는 재활용성 기준을 고려한 설계 방향으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하다.
이러한 구분은 제품의 가치를 낮추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국내 포장재 기업이 향후 규제 방향을 선제적으로 반영해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실제 수출 적용 단계에서는 제품별 포장 구조, 코팅재 함량, 재펄프화 가능성, 분리배출 체계, 식품접촉물질 적합성 등을 기술문서로 입증해야 한다.
9. 한국제지 그린실드: PE 코팅을 줄이고 재펄프화를 강조하다
국내의 또 다른 사례는 한국제지의 그린실드(Green Shield)이다. 그린실드는 특수 배리어 코팅을 적용하여 일반적인 PE 코팅 없이도 식품용 포장재로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발된 종이 소재이다. 한국제지는 내수성, 내유성, 가공 적성을 확보했으며, 종이 원료로 재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주요 용도는 컵지, 식품용기, 화장품용 포장재 등이다.
한국제지는 그린실드의 재펄프화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시험을 진행했으며, 별도의 필름 제거 공정 없이 종이 원료로 재사용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UL의 재펄프화 관련 검증과 TÜV AUSTRIA의 산업용 퇴비화 인증인 ‘OK Compost Industrial’을 취득했다고 설명한다.
프로테고와 그린실드는 지향하는 적용 시장에 차이가 있다. 프로테고가 비교적 얇고 유연한 기능성 종이와 연포장재 대체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면, 그린실드는 컵지와 식품용기 등 비교적 강성이 필요한 종이 포장재 시장에서 PE 코팅을 줄이고 재활용성을 높이는 방향에 가깝다.
두 사례는 서로 경쟁 관계라기보다 국내 종이 포장재 시장이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향후에는 내용물 특성과 유통환경에 따라 종이의 평량, 코팅 방식, 차단성 수준, 가공 방식, 폐기 후 재활용 경로를 다르게 설계하는 세분화 전략이 필요하다.
10. 종이라고 해서 자동으로 재활용되는 것은 아니다
페이퍼라이제이션이 확대될수록 반드시 짚어야 할 문제가 있다. 겉으로 보기에 종이처럼 보인다고 해서 모든 포장재가 동일한 수준으로 재활용되는 것은 아니다.
종이 포장재에 플라스틱 필름, 알루미늄 포일, 접착제, 인쇄잉크, 기능성 코팅제가 결합되면 재펄프화 과정에서 이물질이 발생할 수 있다. 코팅층이 지나치게 두껍거나 분리가 어려우면 종이 재활용 공정에 부담을 줄 수 있다. 종이 함량만 높다고 해서 자동으로 높은 재활용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PPWR 역시 포장재의 외관이나 선언만으로 재활용성을 판단하지 않는다. 재질 설계, 분리수거, 선별, 실제 재활용 규모를 함께 검토하는 방향이다. 2030년부터 디자인 포 리사이클링 기준이 적용되고, 2035년부터는 실제 재활용 규모를 의미하는 ‘Recycled at Scale’ 조건까지 반영된다.
따라서 국내 기업이 유럽 시장에 종이 기반 포장재를 수출하려면 “플라스틱을 종이로 바꾸었다”는 설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포장재의 전체 구조를 명확하게 제시하고, 각 층의 재질과 중량을 확인하며, 재펄프화 가능성, 잔류물 비율, 분리배출 방식, 식품접촉물질 적합성 등을 기술문서에 담아야 한다.
11. 식품 포장에서는 무조건적인 종이 전환을 경계해야 한다
세계포장기구(WPO)는 종이 기반 전환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플라스틱을 무조건 종이로 대체하는 접근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포장재를 변경할 때에는 전 과정 평가(LCA)와 제품 적합성 평가를 함께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포장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내용물을 보호하는 것이다. 식품 포장재의 차단성이 떨어져 유통기한이 짧아지고 식품 폐기량이 증가한다면, 포장재 사용량을 줄인 효과보다 더 큰 환경 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 장거리 수출용 제품, 냉장·냉동 제품, 산패에 민감한 식품, 수분에 취약한 분말제품, 향미 보존이 중요한 커피와 차류는 각각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플라스틱은 가볍고 얇으며 높은 차단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종이는 재생 가능한 자원과 익숙한 재활용 체계를 갖추고 있다. 어느 한 소재가 모든 영역에서 절대적으로 우수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결국 중요한 것은 소재에 대한 선입견이 아니라, 내용물 보호 기능과 자원순환성을 함께 높이는 것이다. 포장재의 경량화, 단일재질화, 재활용성 향상, 바이오 기반 원료 확대, 종이 기반 전환은 서로 경쟁하는 개념이 아니다. 제품 특성에 맞게 조합해야 하는 다양한 선택지이다.
12. 국내 산업이 준비해야 할 과제
국내 제지·포장재 기업에게 페이퍼라이제이션은 분명한 기회이다. K-푸드, K-뷰티, 생활용품의 유럽 수출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PPWR에 대응할 수 있는 기능성 종이 포장재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종이 함량을 높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제품 보호 기능, 기존 설비 적용성, 재활용성, 식품접촉물질 안전성, 규제 대응 문서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해야 한다.
첫 번째 과제는 기능성 코팅 기술의 고도화이다. 수분, 산소, 유분, 향미 차단성을 제품 특성에 맞게 설계하고, 코팅량은 최소화해야 한다. PFAS 등 유해 우려 물질에 대한 관리도 필요하다. PPWR은 2026년 8월 12일부터 식품접촉 포장재의 PFAS 함량에 제한을 적용한다.
두 번째 과제는 자동포장기 적용성 검증이다. 종이 기반 소재는 플라스틱과 굽힘 강성, 마찰계수, 인장강도, 신율, 열접착 조건이 다르다. 실제 생산라인에서 포장속도, 실링온도, 씰 유지시간, 파손률을 검증해야 한다.
세 번째 과제는 재활용성 평가의 체계화이다. 종이처럼 보이는 포장재가 아니라, 실제 종이 재활용 공정에서 펄프로 회수될 수 있는 포장재를 개발해야 한다. 코팅재, 접착제, 인쇄잉크, 실링층이 재펄프화 공정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해야 한다.
네 번째 과제는 기술문서와 적합성 선언서의 준비이다. PPWR 시대에는 친환경성을 선언하는 것보다 입증하는 것이 중요하다. 포장재 구성, 시험성적서, 재활용성 분석, 유해물질 평가, 공급망 정보, 변경 이력, 추적성 정보를 문서화해야 한다.
다섯 번째 과제는 플라스틱과 종이의 균형 있는 접근이다. 종이가 적합한 제품은 과감하게 종이 기반으로 전환하고, 플라스틱이 필요한 영역에서는 단일재질화와 경량화, 재생원료 사용, 재활용성 개선을 추진해야 한다. 양자택일이 아니라 제품별 최적화가 필요하다.
13. PPWR은 소재 전환이 아니라 시장 재편을 요구한다
PPWR은 플라스틱을 무조건 없애기 위한 규정이 아니다. 모든 포장재를 다시 평가하고, 불필요한 포장을 줄이며, 재사용과 재활용이 가능한 구조로 전환하도록 요구하는 규정이다.
페이퍼라이제이션은 그 과정에서 등장한 중요한 흐름 가운데 하나이다. 유럽에서는 Koehler Paper, Sappi, Paptic, Metsä Board가 기능성 배리어 페이퍼와 설비 호환성, 공급망 안정성, 재활용 체계를 중심으로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한솔제지 프로테고와 프로테고 HS, 한국제지 그린실드와 같은 제품이 등장하며 종이 포장재의 기술적 범위를 넓히고 있다.
중요한 것은 종이가 플라스틱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지를 묻는 것이 아니다. 제품에 필요한 기능을 유지하면서 플라스틱과 알루미늄 사용량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 사용 후 재활용 경로를 얼마나 명확하게 만들 수 있는지, 그 결과를 어떻게 객관적인 데이터와 기술문서로 증명할 수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향후 포장재 시장에서 경쟁력을 결정하는 것은 소재의 이름이 아니다. 내용물을 보호하는 기능, 기존 설비에서의 생산성, 재활용 공정과의 적합성, 규제 대응 데이터, 그리고 이를 입증할 수 있는 기술문서이다.
PPWR은 유럽의 규제이지만, 변화는 이미 국내 시장에도 도착하였다. 국내 제지산업과 포장산업이 페이퍼라이제이션을 단순한 친환경 마케팅이 아니라 새로운 기술시장으로 바라봐야 하는 이유이다.
#페이퍼라이제이션 #기능성종이포장재 #배리어페이퍼 #PPWR #종이포장재 #친환경포장 #포장재재활용 #재활용성평가 #식품포장재 #포장기술문서
유럽의 기능성 배리어 페이퍼 혁신과 국내 종이 포장재 산업의 과제
포장산업에서 종이는 가장 오래된 소재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최근 유럽에서 빠르게 확산하고 있는 종이 기반 포장재는 과거의 종이 포장과는 성격이 다르다. 단순히 플라스틱을 종이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플라스틱 연포장재가 담당해 왔던 수분 차단성, 산소 차단성, 내유성, 향미 보존성, 열접착성, 인쇄 적성, 자동포장기 적용성까지 종이에 부여하려는 기술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른바 ‘페이퍼라이제이션(Paperization)’이다. 종이화 또는 종이 기반 전환으로 번역할 수 있지만, 그 의미는 단순한 소재 대체를 넘어선다. 플라스틱과 알루미늄을 복합적으로 사용해 온 기존 포장 구조를 재검토하고, 기능성 코팅과 공정기술을 활용해 종이 중심의 새로운 포장 시스템으로 재설계하는 흐름이다.
Koehler Paper, Sappi, Paptic, Metsä Board 등 인터팩 2026에 참가한 유럽의 대표적인 제지·포장재 기업들은 종이가 더 이상 친환경 이미지를 강조하는 보조 소재가 아니라, 기존 플라스틱 포장재와 경쟁할 수 있는 산업용 소재로 이동하고 있다고 설명하였다.
국내에서도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한솔제지는 기능성 차단지인 프로테고(Protego)를 개발한 데 이어, 2026년에는 기존 설비 적용성과 열접착성을 강화한 프로테고 HS(Heat Sealable)제품군을 선보였다. 유럽과 국내의 기술 흐름을 함께 살펴보면, 향후 종이 포장재 시장의 승부처가 어디에 있는지가 보다 분명하게 보인다.
1. 종이 포장재가 다시 주목받는 이유
종이는 본래 재생 가능한 자원에서 생산되고, 소비자에게 익숙한 분리배출 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식품, 화장품, 생활용품 등에 사용되는 연포장재 시장에서는 오랫동안 플라스틱과 알루미늄이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가볍고 유연하며, 열접착이 쉽고, 수분과 산소를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고기능성 포장을 구현하기 위해 PET, PE, PP, PA, EVOH, 알루미늄 포일 등을 여러 층으로 합지할 경우 사용 후 재활용이 매우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소비자가 외관만 보고 재질을 구분하기 어렵고, 분리배출을 하더라도 복합재질을 경제적으로 분리하기 쉽지 않다. 포장의 기능은 높지만 순환경제 측면에서는 구조적인 한계를 갖는 것이다.
유럽연합의 PPWR은 이러한 문제를 포장재 설계 단계부터 다시 살펴보도록 요구하고 있다. Regulation (EU) 2025/40은 모든 포장재에 적용되며, 포장재의 전 생애주기에 걸쳐 지속가능성, 표시, 생산자책임, 불필요한 포장 감축, 재사용, 재활용 등의 기준을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은 2026년 8월 12일부터 적용된다.
PPWR 제6조는 시장에 출시되는 모든 포장이 재활용 가능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한다. 재활용 가능성을 판단할 때에는 단순히 “재질상 재활용할 수 있는가”만 보는 것이 아니다. 재질 회수가 가능하고, 다른 폐기물 흐름의 재활용성을 저해하지 않으며, 실제 분리수거와 선별을 거쳐 일정 규모 이상으로 재활용될 수 있어야 한다.
PPWR은 2030년부터 디자인 포 리사이클링(Design for Recycling) 기준을 적용하고, 포장재의 재활용성을 A·B·C 등급으로 평가하는 구조를 도입한다. C등급 미만의 포장은 기술적으로 재활용이 어려운 포장으로 간주되며 시장 출시가 제한된다. 2038년부터는 A 또는 B등급만 시장에 출시할 수 있도록 기준이 강화된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2028년 1월 1일까지 포장재 카테고리별 세부 기준을 마련할 예정이다.
따라서 페이퍼라이제이션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다. PPWR 시행을 앞두고 브랜드 기업과 포장재 제조기업이 복합재질 포장의 구조를 다시 설계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실질적인 대응 전략이다.
2. Koehler Paper: 제품에 필요한 기능만 선택하는 배리어 페이퍼
독일의 Koehler Paper는 NexPlus와 NexPlus Advanced제품군을 중심으로 기능성 종이 포장재를 확대하고 있다. 이 제품은 종이 원지의 뒷면에 수성 배리어 분산 코팅을 적용하여 내유성, 향미 차단성, 산소 차단성 등을 확보하도록 설계되었다. 종이의 재활용 흐름과 양립할 수 있는 코팅 구조를 지향한다는 점이 핵심이다.
주목할 부분은 모든 포장재에 동일한 수준의 차단성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향신료와 건조식품처럼 상대적으로 낮은 차단성으로도 충분한 제품이 있는 반면, 향미 보존이나 산소 차단이 중요한 제품도 있다. Koehler Paper는 내용물의 특성에 따라 필요한 기능을 선택할 수 있는 ‘온디맨드 배리어 페이퍼’ 개념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플로팩, 각저 봉투, 삼방실링 봉투, 파우치 등 기존의 다양한 포장 형태에 적용할 수 있도록 설계하고 있다. 새로운 친환경 소재가 시장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소재 자체의 친환경성뿐 아니라 기존 자동포장기에서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판단이다.
향후 경쟁은 수성 코팅을 넘어 바이오 기반 코팅과 복합 기능성의 고도화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종이에 기능을 더하면서도 재활용 공정에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설계하는 기술이 중요해지고 있다.
3. Sappi: 종이 포장은 파일럿 단계를 넘어 대량적용 단계로 이동한다
Sappi는 인터팩 2026을 페이퍼라이제이션이 실험 단계를 넘어 본격적인 시장 확대 단계로 전환된 시점으로 평가하였다. PPWR 시행 방향이 구체화되면서 규제 불확실성을 이유로 결정을 미뤄 왔던 브랜드 기업들이 소재 전환을 본격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Sappi가 강조하는 핵심은 원단 가격이 아니라 총소유 비용(Total Cost of Ownership)이다. 종이와 플라스틱의 원단 단가만 비교하면 플라스틱이 저렴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 분담금, 재활용성 등급에 따른 비용 차이, 규제 대응 비용, 브랜드 신뢰도, 소비자 선택, 향후 포장재 전환 비용까지 함께 고려하면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Sappi는 자체 조사 결과를 근거로 총소유비용 관점에서 분석한 사례의 절반 이상에서 종이가 플라스틱과 유사한 비용 경쟁력을 확보하거나 더 선호되는 결과를 보였다고 설명하였다. 이는 기업 자체의 분석 결과이므로 일반화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지만, 포장재의 경제성을 평가하는 기준이 바뀌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Sappi는 제과류와 같이 수분, 기름, 향미 차단성이 필요한 제품에 적용할 수 있는 Guard Duo배리어 페이퍼도 제시하였다. 이제 종이 포장재는 단순한 종이봉투가 아니라, 식품 보존성과 자동포장기 적용성을 함께 고려한 기능성 소재로 발전하고 있다.
4. Paptic: 기존 플라스틱 롤을 섬유 기반 롤로 교체한다
핀란드의 Paptic은 기존 생산라인을 크게 변경하지 않고
플라스틱 소재를 섬유 기반 소재로 전환할 수 있는 ‘드롭
인(Drop-in)’ 접근을 강조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기존
포장설비에 플라스틱 필름 롤을 투입하던 방식에서, 소재
롤만 섬유 기반 소재로 교체하는 개념이다.
친환경 소재가 우수한 환경성을 갖더라도 생산속도가 지
나치게 떨어지거나, 설비 개조 비용이 많이 들거나, 제품
표면에 분진과 흠집이 발생하면 실제 산업 현장에 적용
되기 어렵다. Paptic은 유통용 봉투, 전자제품, 프리미
엄 제품, 위생 관련 비식품 포장 등에 적용 가능성을 검증
해 왔다.
Paptic이 다음 단계의 과제로 제시한 것은 코팅 없이도 열
접착이 가능한 섬유 기반 소재이다. 현재 다수의 종이 기
반 소재는 실링성을 확보하기 위해 별도의 코팅이 필요하
다. 그러나 코팅은 소재 구조를 복잡하게 만들고 재활용성
평가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향후에는 종이의 재활용성을
유지하면서도 플라스틱에 가까운 실링성과 가공성을 확
보하는 방향으로 기술 경쟁이 이어질 전망이다.
5. Metsä Board: 소재 경쟁은 산림과 공급망 경쟁
으로 확대된다
핀란드의 Metsä Board는 종이 기반 포장재 경쟁력을 소
재 성능만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안정적인 원료 확보, 지
속가능한 산림 관리, 생산시설의 에너지 전환, 장기 공급
망 구축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Metsä Board는 2030년까지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는 생산체계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일부 생산거점은 이미 98% 수준의 화석연료 비사용 체계를 구축했다고 설명한다. 모기업 그룹에는 약 9만 명의 산림 소유자가 참여하고 있으며, 매년 약 3,300만 그루의 나무를 식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향후 종이 포장재 경쟁이 단순히 “종이가 친환경적이다”라는 선언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원료가 어디에서 왔는지, 산림이 지속가능하게 관리되고 있는지, 생산 과정에서 탄소배출을 얼마나 줄였는지, 사용 후 재활용 체계가 실제로 작동하는지까지 확인해야 한다.
6. 국내에서도 시작된 기능성 종이 포장재 경쟁
국내 제지산업 역시 디지털화에 따른 인쇄용지 수요 감소와 원재료 가격 변동, 에너지 비용 상승이라는 복합적인 환경에 놓여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포장용지와 기능성 종이는 단순한 대체 시장이 아니라 새로운 성장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국내 제지업계도 종이를 인쇄 매체가 아니라, 플라스틱을 일부 대체할 수 있는 고기능성 소재로 전환하기 위한 연구개발을 확대하고 있다. 최근 국내 제지업계가 종이 포장재를 중심으로 새로운 수요를 확보하려 한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다만 국내 시장에서는 종이 포장재의 적용 범위를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컵지, 식품용기, 트레이, 완충재, 택배 포장과 같이 비교적 두꺼운 종이 기반 포장재 시장과, 플라스틱 연포장재를 대체하려는 얇은 기능성 배리어 페이퍼 시장은 기술적 요구 수준이 다르다.
특히 커피, 김, 초콜릿, 분말제품, 제과류, 화장품 파우치 등에 적용하려면 단순한 내수성과 내유성만으로 충분하지않다. 산소투과도(OTR), 수분투과도(WVTR), 실링강도, 낙하 충격, 핀홀 발생 가능성, 인쇄 적성, 자동포장기 운전속도, 식품접촉물질 적합성, 재펄프화 가능성까지 함께 평가해야 한다.
국내에서 주목할 대표적인 사례가 한솔제지의 프로테고와 한국제지의 그린실드이다.
7. 한솔제지 프로테고: 국내 기능성 배리어 페이퍼의 대표 사례
한솔제지의 프로테고(Protego)는 수분, 산소, 유분, 냄새 등을 차단할 수 있도록 설계된 기능성 종이 소재이다. 한솔제지는 프로테고 자체로 차단 기능과 실링 성능을 확보할 수 있어 합지 공정을 줄이고 생산성 향상에 기여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알루미늄과 플라스틱 필름을 일부 대체하고, 종이 재활용 흐름으로 연결할 수 있다는 점을 주요 특징으로 제시하고 있다.
프로테고는 54g, 70g, 90g 평량으로 공급되며, 커피와 차류, 식품, 제과, 화장품, 생활용품, 반려동물 사료 등 다양한 제품군에 적용할 수 있도록 개발되었다.
프로테고의 의미는 단순히 국내 제지기업이 친환경 종이를 개발했다는 데 있지 않다. 국내에서도 기존 연포장재의 기능을 종이 기반 소재로 이전하려는 기술개발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기존의 고차단성 연포장재는 인쇄필름, 알루미늄 포일, 실런트 필름 등을 여러 겹으로 합지하는 구조가 일반적이었다. 프로테고는 종이 원지에 기능성 배리어를 부여하여 구조를 단순화하고,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이는 방향을 제시한다. 모든 제품에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비교적 높은 차단성이 요구되는 제품군까지 종이 기반 전환 가능성을 확대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8. 프로테고 HS: 열접착성과 기존 설비 적용성을 강화하다
소스, 김, 커피 등 다양한 제품에 적용할 수 있으며, 고객
사의 인쇄 방식과 요구 물성에 따라 5개 제품군으로 구성
되었다. 인쇄, 가공, 충전 등 주요 패키징 공정에 대한 사
전 테스트를 완료해 별도의 설비 변경 부담을 줄일 수 있
도록 설계했다는 설명이다.
이 지점은 유럽 기업들이 강조하는 방향과 정확히 맞닿
아 있다. 친환경 포장재가 실제 시장에 확산하려면 소재
의 친환경성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존 설비에서 생산할
수 있어야 하고, 생산속도를 유지해야 하며, 실링 불량과
파손률 증가를 방지해야 한다. 포장재 전환에 따른 비용
과 위험을 줄여야 브랜드 기업도 움직일 수 있다.
한솔제지는 프로테고 HS가 종이 소재 특성상 국내 EPR
분담금 절감에 기여할 수 있으며, PPWR의 재활용성 A
등급 방향에 부합하도록 설계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다만 여기에는 구분이 필요하다. PPWR의 재활용성 A·B·C등급은 규정에 포함되어 있지만, 포장재 카테고리별 디자인 포 리사이클링 세부 기준은 2028년까지 위임법령을 통해 구체화될 예정이다. 따라서 현시점에서
‘PPWR A등급 부합’이라는 표현은 유럽연합이 공식 인증한 최종 등급이라기보다, 향후 예상되는 재활용성 기준을 고려한 설계 방향으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하다.
이러한 구분은 제품의 가치를 낮추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국내 포장재 기업이 향후 규제 방향을 선제적으로 반영해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실제 수출 적용 단계에서는 제품별 포장 구조, 코팅재 함량, 재펄프화 가능성, 분리배출 체계, 식품접촉물질 적합성 등을 기술문서로 입증해야 한다.
9. 한국제지 그린실드: PE 코팅을 줄이고 재펄프화를 강조하다
국내의 또 다른 사례는 한국제지의 그린실드(Green Shield)이다. 그린실드는 특수 배리어 코팅을 적용하여 일반적인 PE 코팅 없이도 식품용 포장재로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발된 종이 소재이다. 한국제지는 내수성, 내유성, 가공 적성을 확보했으며, 종이 원료로 재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주요 용도는 컵지, 식품용기, 화장품용 포장재 등이다.
한국제지는 그린실드의 재펄프화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시험을 진행했으며, 별도의 필름 제거 공정 없이 종이 원료로 재사용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UL의 재펄프화 관련 검증과 TÜV AUSTRIA의 산업용 퇴비화 인증인 ‘OK Compost Industrial’을 취득했다고 설명한다.
프로테고와 그린실드는 지향하는 적용 시장에 차이가 있다. 프로테고가 비교적 얇고 유연한 기능성 종이와 연포장재 대체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면, 그린실드는 컵지와 식품용기 등 비교적 강성이 필요한 종이 포장재 시장에서 PE 코팅을 줄이고 재활용성을 높이는 방향에 가깝다.
두 사례는 서로 경쟁 관계라기보다 국내 종이 포장재 시장이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향후에는 내용물 특성과 유통환경에 따라 종이의 평량, 코팅 방식, 차단성 수준, 가공 방식, 폐기 후 재활용 경로를 다르게 설계하는 세분화 전략이 필요하다.
10. 종이라고 해서 자동으로 재활용되는 것은 아니다
페이퍼라이제이션이 확대될수록 반드시 짚어야 할 문제가 있다. 겉으로 보기에 종이처럼 보인다고 해서 모든 포장재가 동일한 수준으로 재활용되는 것은 아니다.
종이 포장재에 플라스틱 필름, 알루미늄 포일, 접착제, 인쇄잉크, 기능성 코팅제가 결합되면 재펄프화 과정에서 이물질이 발생할 수 있다. 코팅층이 지나치게 두껍거나 분리가 어려우면 종이 재활용 공정에 부담을 줄 수 있다. 종이 함량만 높다고 해서 자동으로 높은 재활용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PPWR 역시 포장재의 외관이나 선언만으로 재활용성을 판단하지 않는다. 재질 설계, 분리수거, 선별, 실제 재활용 규모를 함께 검토하는 방향이다. 2030년부터 디자인 포 리사이클링 기준이 적용되고, 2035년부터는 실제 재활용 규모를 의미하는 ‘Recycled at Scale’ 조건까지 반영된다.
따라서 국내 기업이 유럽 시장에 종이 기반 포장재를 수출하려면 “플라스틱을 종이로 바꾸었다”는 설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포장재의 전체 구조를 명확하게 제시하고, 각 층의 재질과 중량을 확인하며, 재펄프화 가능성, 잔류물 비율, 분리배출 방식, 식품접촉물질 적합성 등을 기술문서에 담아야 한다.
11. 식품 포장에서는 무조건적인 종이 전환을 경계해야 한다
세계포장기구(WPO)는 종이 기반 전환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플라스틱을 무조건 종이로 대체하는 접근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포장재를 변경할 때에는 전 과정 평가(LCA)와 제품 적합성 평가를 함께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포장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내용물을 보호하는 것이다. 식품 포장재의 차단성이 떨어져 유통기한이 짧아지고 식품 폐기량이 증가한다면, 포장재 사용량을 줄인 효과보다 더 큰 환경 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 장거리 수출용 제품, 냉장·냉동 제품, 산패에 민감한 식품, 수분에 취약한 분말제품, 향미 보존이 중요한 커피와 차류는 각각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플라스틱은 가볍고 얇으며 높은 차단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종이는 재생 가능한 자원과 익숙한 재활용 체계를 갖추고 있다. 어느 한 소재가 모든 영역에서 절대적으로 우수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결국 중요한 것은 소재에 대한 선입견이 아니라, 내용물 보호 기능과 자원순환성을 함께 높이는 것이다. 포장재의 경량화, 단일재질화, 재활용성 향상, 바이오 기반 원료 확대, 종이 기반 전환은 서로 경쟁하는 개념이 아니다. 제품 특성에 맞게 조합해야 하는 다양한 선택지이다.
12. 국내 산업이 준비해야 할 과제
국내 제지·포장재 기업에게 페이퍼라이제이션은 분명한 기회이다. K-푸드, K-뷰티, 생활용품의 유럽 수출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PPWR에 대응할 수 있는 기능성 종이 포장재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종이 함량을 높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제품 보호 기능, 기존 설비 적용성, 재활용성, 식품접촉물질 안전성, 규제 대응 문서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해야 한다.
첫 번째 과제는 기능성 코팅 기술의 고도화이다. 수분, 산소, 유분, 향미 차단성을 제품 특성에 맞게 설계하고, 코팅량은 최소화해야 한다. PFAS 등 유해 우려 물질에 대한 관리도 필요하다. PPWR은 2026년 8월 12일부터 식품접촉 포장재의 PFAS 함량에 제한을 적용한다.
두 번째 과제는 자동포장기 적용성 검증이다. 종이 기반 소재는 플라스틱과 굽힘 강성, 마찰계수, 인장강도, 신율, 열접착 조건이 다르다. 실제 생산라인에서 포장속도, 실링온도, 씰 유지시간, 파손률을 검증해야 한다.
세 번째 과제는 재활용성 평가의 체계화이다. 종이처럼 보이는 포장재가 아니라, 실제 종이 재활용 공정에서 펄프로 회수될 수 있는 포장재를 개발해야 한다. 코팅재, 접착제, 인쇄잉크, 실링층이 재펄프화 공정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해야 한다.
네 번째 과제는 기술문서와 적합성 선언서의 준비이다. PPWR 시대에는 친환경성을 선언하는 것보다 입증하는 것이 중요하다. 포장재 구성, 시험성적서, 재활용성 분석, 유해물질 평가, 공급망 정보, 변경 이력, 추적성 정보를 문서화해야 한다.
다섯 번째 과제는 플라스틱과 종이의 균형 있는 접근이다. 종이가 적합한 제품은 과감하게 종이 기반으로 전환하고, 플라스틱이 필요한 영역에서는 단일재질화와 경량화, 재생원료 사용, 재활용성 개선을 추진해야 한다. 양자택일이 아니라 제품별 최적화가 필요하다.
13. PPWR은 소재 전환이 아니라 시장 재편을 요구한다
PPWR은 플라스틱을 무조건 없애기 위한 규정이 아니다. 모든 포장재를 다시 평가하고, 불필요한 포장을 줄이며, 재사용과 재활용이 가능한 구조로 전환하도록 요구하는 규정이다.
페이퍼라이제이션은 그 과정에서 등장한 중요한 흐름 가운데 하나이다. 유럽에서는 Koehler Paper, Sappi, Paptic, Metsä Board가 기능성 배리어 페이퍼와 설비 호환성, 공급망 안정성, 재활용 체계를 중심으로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한솔제지 프로테고와 프로테고 HS, 한국제지 그린실드와 같은 제품이 등장하며 종이 포장재의 기술적 범위를 넓히고 있다.
중요한 것은 종이가 플라스틱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지를 묻는 것이 아니다. 제품에 필요한 기능을 유지하면서 플라스틱과 알루미늄 사용량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 사용 후 재활용 경로를 얼마나 명확하게 만들 수 있는지, 그 결과를 어떻게 객관적인 데이터와 기술문서로 증명할 수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향후 포장재 시장에서 경쟁력을 결정하는 것은 소재의 이름이 아니다. 내용물을 보호하는 기능, 기존 설비에서의 생산성, 재활용 공정과의 적합성, 규제 대응 데이터, 그리고 이를 입증할 수 있는 기술문서이다.
PPWR은 유럽의 규제이지만, 변화는 이미 국내 시장에도 도착하였다. 국내 제지산업과 포장산업이 페이퍼라이제이션을 단순한 친환경 마케팅이 아니라 새로운 기술시장으로 바라봐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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